어머니, 많이 그립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무척이나 생각나는 날입니다. 부모님에게 잘못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저는 불효자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고 세상에서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몇 년 전 어머니 곁에 누워있는 제 손을 잡으신 후, “나같이 못난 어미에게서 너와 같은 훌륭한 자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하시던 그 말씀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아들의 머리를 늘 맴돌아 어머니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더더욱 발버둥치고 살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리오마는 어머님의 깊은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열네살에 시집와 100세까지 사셨던 그 나날들 고생 참 많으셨지요. 나를 낳으시고 돌도 지나지 않아 방벽이 무너지며 어머니를 덮쳐 고관절을 다쳐 한쪽 다리를 약간 저시던 그 모습에 창피했던 일, 궂은 날이면 뼈가 쑤시는데 다리를 제대로 주물러 주지 못했던 일에 대해 지금이라도 죄송함을 고백합니다. 한글을 배우시느라 버스를 타고 가시며 중학교 시절 저에게 상가 간판의 한글을 한자 한자 묻던 어머니의 모습은 제가 평생 살면서 배움의 자세로 살아가는 아들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버스 지나간 후에 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늘 기억하며 삽니다.
아들이 잘하든 못하든 꾸중 한 번 않으시고, 늘 품어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신앙을 가지신 후, 쑤시던 다리가 치료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날마다 새벽이면 성경을 읽으시며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50이 넘도록 물욕이 없이 어렵게 살아가는 저에게 옆으로 다가와 손에다 연금받은 돈을 쥐어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콧등이 진합니다. 사실 주셨던 돈으로 쌀을 팔아 먹곤했었습니다. 안주셨으면 굶었을지도 모르는데 참 감사합니다.
어머니, 제가 돈벌어 잘살고 자식들 호강시키고 어머니 용돈도 자주 드리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목회의 길, 돈과 멀리했던 나의 나눔 생활이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가며 살게 했습니다. 어머니도 늘 그렇게 살던 아들 부부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웠지만 신앙이 두터우셔서 이해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는 저의 삶의 원동력은 저희 사역을 위해 수십년간 매일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기도의 힘입니다. 지금은 어머니의 빈자리가 큽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계실 때 잘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못해 맛있는 것 한번 사드리지 못하고, 그저 자주 찾아뵙는 것으로 만족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사시던 큰집에 가서 어머니 대신 장로이신 형님부부와 처가 부모님께 맛있는 식사 대접해드리고 왔습니다. 형님이 계셔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저의 머리는 왠지 텅빈 것같았습니다. 가시기 전 2년 동안 치매에 걸리셔서 지금 몇 살이냐고 몇 번씩 묻던 말씀이 아쉬었지만 지금는 계시지 않으니 반복하시던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얼마 전 손자 현명이 부부가 손주들을 데리고 저희 집에 다녀갔는데 벌써 예담이는 초3이고, 예준이는 내년에 학교에 갑니다. 어머니 가신동안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컷습니다. 제가 어머니 다리 주물러 드리듯, 손주들이 요즘은 제다리를 주물러 주곤합니다. 그때마다 어머니 다리 주무르던 제 모습이 많이 생각납니다.
어머니, 손자 현명이가 그러더라구요. 아버지는 어렵고 힘들 때 눈물을 흘리지 않냐고요? 나는 강한 사람이라 울지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버이날인 오늘 아침은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아버지보다 오래 사셨던 어머니가 그립고, 늦게나마 좀 더 잘해드렸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효도는 “내리사랑”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못다한 효도, 자식들에게 더해 주며 살겠습니다.
어머니, 언젠가 다시 뵈올날 생각하며 세상에서 내리사랑 실천하며, 어머니가 기도하신 뜻 세상에서 꼭 이루어 드리는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기원/ 책사랑작은도서관 대표, 하늘정원교회 목사
정대표의 손주가 그려준 어버이날 선물